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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

서지훈1 2014. 6. 17. 05:45

사람만 보세요  기본 폴더 2005/02/12 09:26 ()

이글은 우리나라 지역감정의 원조 훈요십조에 얽힌이야기입니다
물론 우리역사에 이렇게 간악한 무리들이 있었음을 주장하면서 적어봅니다

【훈요십조】에 차령산맥과 금강을 들먹이며 전라도가 배역의 땅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인재로 등용하면 반역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일부사람에 의해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끝이 안좋다]는 식으로 논리전개에 빌미를 준 대표적인 문헌이다

【훈요십조】의 내용은 이렇다
▶차령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과 땅이
모두 배반하니 그곳 사람 또한 배반한다.
조정에 들어 오면 변란을 꾀하고 임금이 행차하는
길을 막아 난을 일으키니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벼슬을 주지 말라◀

소위 "배산역수"라는 풍수지리에서 나온말이다.

배산역수: 임금이 사는곳 개경(수도)에 꼬리들 두고 산이나 강이 역으로 뻗은 것을 말한다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지도책을 펴보시라

차령산맥의 방향이 개경과 반대쪽인가
금강의 물줄기가 개경과 반대쪽으로 흐르는가
그렇다면 한강 특히 남한강은 어덯게 말해야 하는가


방향을 놓고 말하면 금강과 차령산맥보다는 낙동강과 태백산맥이 더 배역의 땅이다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을 3대 배류수로 꼽았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쿠테타(배역)와 관련된 변란은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가장 적게 일어났다는 내용도 있다.

조선조 영조가 왜 영남를 치고 평영남비를 세웠으며.....
또 우리 현대사는 어떠했는가?

◆훈요십조 : 문헌에 의하면 고려 현종때 『고려사』의 재편찬에 직접 참여한 당시 권력가 영남출신 관료(최제안)가 영남출신 관료(최항)의집에서 왕건의유언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고려사기록에 끼워넣었다

거란의 침입으로 타버린 『고려사』를 왕건이 죽은후 80년후 현종시절에 재편찬하면서 저지른일인데 건국조의 유언이 영남출신 선비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도 아리송한 일이지만 현종의 즉위에 킹메이커 역할을 한사람들이 바로 신라계 출신 최제안과 최항이다

정작 유언은 백제 출신 박술희에게 했다고 하니...(이것도 참으로 묘한일이지만 훈요십조가 조작되었다면 조작수법이 치밀했다는 이야기이다 )

고려초 백제계에 실권을 빼앗긴 신라계가 제6대 현종즉위와 더불어 실권을 차지한 신라계의 정략적인 수법이라고 생각되어지는데 『삼국사기』와 『악지』에는 현종의 집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현종은 신라의 외손자으로서 왕위에 오르셨다. 이후 모두 그 자손이 법통을 이으니 어찌 신라의 음덕이 아닌가?≫ 『삼국사기』

≪모든 것을 끊음으로써 나라를 다시세웠다≫-『악지』

무엇을 끊었다는 말인가 이는 고려초 왕실과조정에는 백제계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모두 몰아냈다는 이야기이다

【왕건은 후계자로 전라도계열인 혜종(제2대)에게 왕권을 넘겼으나 병약하였으며 정작 왕건의 좌우 핵심측근(도선, 최지몽등)도 백제계열이 차지했음.】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전라도 삼례로 피신갔는데 지방관리 조용겸이 야밤에 소란을 피우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임금의 행차에 변을 일으킨 조용겸은 죽음을 당한다

이사건이 벌어진후에 고려사는 재편찬되고---이때 훈요십조가 등장하는데 그내용중에는 "임금의 행차에 변란을 일으키니"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왕건의 유언이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했다는 이야기다---이부분이 훈요십조가 위작이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왕건은---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전라도로 피난가는 행차도 예언했고 또 삼례에서 조용겸의 변란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너무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왕건이 쪽집게 점쟁이던가 아니면 훈요십조가 명백한 위작이다는 증거입니다

추론=====현종집권과 더불어 조정을 손안에 넣은 신라계출신들이 차제에 백제계의 조정진출을 막고자 금강과 차령산맥을 들먹여서 술수를 저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