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건양다경

서지훈1 2019. 2. 11. 23:34


[재질문] [재질문] ★ ‘설날, 구정, 음력설’에 대하여(17:03 보완)
  • 작성자김봉규
  • 등록일2016. 2. 23.
  • 조회140

미흡한 사전 풀이에 대해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ㅇ 新正----<新正月元日=새로운 음력 정월 초하루>이라는 본디 배달말, 

.........?-----부왜배에 의해 양력을 쉬면서 '양력 1월 1일'을 이르는 말로 변질.

ㅇ 舊正----배달겨레는 력사 상 쓰지 않은 말.

.........?----나라잃은시대[실국시대]인 1923년 2월 16일에 <舊正(月元日)>에서 비롯된 말로 '음력 정월 초하루'.  

 

로 바로잡으라 함에도 바로잡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배달겨레라면 누구든 납득할 수 있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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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 김봉규                               등록일시 : 2016. 2. 19.

미흡한 사전 풀이를 수정 보완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대로 두겠다는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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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 김봉규                               등록일시 : 2016. 2. 15.

앞(2016. 2. 5.)에서 어떤 질문자가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신정’ 혹은 ‘양력설’이라고들 하는데, 음력 1월 1일은 ‘구정, 설날, 음력설’ 이라고들 한다. 제가 듣기로는 ‘구정’이라고 하는 게 일제의 잔재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설날’을 쓰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국립국어원에서 답변한 글을 보니깐

http://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1&qna_seq=1110

http://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61&qna_seq=14153

2007년 글과 2008년 글인데 아직도 이 글이 국립국어원의 입장인지 궁금합니다. ‘음력설, 양력설’을 ‘구정, 신정’이라고 하는 게 일제의 잔재 혹은 일제의 영향이 아닌 건가.』

 

이에 대한 답변(2016. 2. 11.)이 아래와 같습니다.

 

『기존의 답변처럼 '구정'을 일제의 잔재로 볼 근거가 없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해 거론하겠습니다.

 

배달겨레는 을미년(1895) 11월 16일까지는 음력을 쉬어 왔습니다. 그러다 김홍집, 졍병하, 죠희연, 유길준 정부가 고시하기를 ‘11월 17일부터는 양력을 쉰다’고 했습니다. 음력 11월 17일이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이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설을  '쇤다'와 '쉰다'에 대해서 자세히 글을 쓸 것입니다) 

 

○ 丙申倭曆亂曰捨陰曆而取陽曆之亂

附倭輩弘夏淵吉之政府告示曰自乙未十一月十七日捨陰曆而取陽曆且年號以建陽作之云云建陽之陽乃陽曆之陽也建陽二字語不成矣捨陰曆而取陽曆云者意成而捨陰曆而建陽曆云者意不成也建之義乃立也陽之義乃陽曆也建陽曆之語意可笑焉弘輩添作建陽多慶四字之句而流布焉積善者受慶云則可也而取陽曆者受慶云則是欺詐之譎計也附倭輩執大筆而寫建陽多慶四字乃貼于大門而誇示焉於是乎儒林人弄之曰不忘陰曆而立春則大吉必來焉立春日以陰曆算之故以大吉稱之也仍叱之曰建陽多慶云者語不成而立春大吉云者語成矣名不正則事不成也如是之叱言處處起而喧之故未過一年而廢之按悲哀王遺稿無所一出建陽二字也悲哀王不欲廢陰曆之心可見於此矣史氏曰弘夏淵吉之無知沒覺在於建陽多慶之語《老石先生文集》二 쪽124-126.

 

읽는이를 위해 배달말로 뒤쳐 드리겠습니다.

 

○ 병신(1896)왜력란은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한 란>입니다.

부왜배(왜로에 빌붙은 무리, 자팬말로 ‘친일파’) 홍하연길(김홍집, 졍병하, 죠희연, 유길준) 정부가 고시하기를, “을미년(1895) 1117일부터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하고, 또 년호를 <건양>으로 지었노라”라고 했습니다. 건양의 ‘양’은 양력 ‘양’입니다. 건양이라는 두 글자말은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취했다고 하면 뜻은 성립되나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뜻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건’이라는 말뜻은 ‘세우다’이고 ‘양’이라는 뜻은 ‘양력’입니다. 그래서 ‘건양력’이라는 말이 우스운 것입니다. 홍집부왜배는 <건양다경>이라는 넉자 구를 또 지어 류포한 것입니다. ‘선(善)을 쌓으면 경사(慶事)를 얻게 된다’고 하면 옳은 말이나 ‘양력을 취하면 경사를 얻게 된다’는 것은 속임수 휼계(譎計)입니다. 부왜배는 큰붓을 잡고서 <건양다경> 넉자를 베껴서 대문에 붙이고서 과시했습니다. 이에 유림인들이 놀리며 말하기를, ‘음력을 잊지 않아 <립춘(立春)이면 대길(大吉)이 반드시 온다>고 했습니다. 립춘날은 음력으로 계산한 것인 까닭에 대길이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꾸짖어 말하기를, ‘<건양다경>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으나 <립춘대길>은 말이 성립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꾸짖는 말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두려워하게 된 까닭에 1년이 지나지 않아서 폐지되었습니다. 비애왕(이른바 ‘고종’) 유고(주연선집)에는 한 번도 <건양>이라는 두 글자가 나온 바가 없습니다. 비애왕이 음력을 버리지 않으려 한 마음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씨(史氏-력사가)가 이르기를, “홍하연길의 무지몰각함이 <건양다경>이라는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저(김봉규)는 글(★ 바로잡을 말(211)-<신정(新正), 구정(舊正)>-2008. 12. 31.)을 썼습니다.(▣====== ======▣ 부분)

 

 

 

▣===============

 

★ 바로잡을 말(211)-<신정(新正), 구정(舊正)>

질문자 김봉규, 등록일 2008. 12. 31. 조회 310

 

이 글은 <사전 부서>에서 읽고, 아래와 같이 바로잡은 뒤 게시판에 올려 7천만 배달겨레에게 홍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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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표준국어대사전≫에

 

(1) 신정07(新正)「명사」

「1」양력 1월 1일.

「2」‘양력설’을 구정(舊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신정 연휴/신정을 맞아 민욱은 며칠 동안 집에 머물러 있었다.≪신상웅, 심야의 정담≫

 

(2) 구정(舊正)06「명사」

「1」‘음력설’을 신정(新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구정을 쇠다.

「2」음력 정월.

 

이 실려 있습니다. 이에 대해 거론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총독부는 1936년에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을 발간했던 것입니다. 겉보기는 배달겨레의 전국 각 지방에서 행해지는 민속이나 오락을 찾아서 널리 보급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배달겨레문화력사 뿌리없애기 정책을 펴기 위한 전단계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랜 력사를 두고 선조들이 쉬어온 배달겨레 민속명절인 <설>을 <きゅうせい(끼유세이=舊正)>이라는 해괴말로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리고는 양력 1월 1일을 <しんせい(신세이=新正)>라 한 것입니다.

 

<구(舊)>는 “㉠옛, ㉡친구, ㉢늙은이, ㉣구의, ㉤오래다...” 등의 뜻을 가진 말이라 이것이 말머리에 놓이면 <오래되어 낡은 것, 오래되어 낡아 없애야 할 것...> 등으로 써 왔던 것입니다. 그 례가 <구각(舊殼)=낡은 껍질, 구격(舊格)=낡은 격식, 구갱(舊坑)=폐쇄된 갱, 구습(舊習)=낡은 습관, 구태(舊態)=낡은 모습...등>입니다.

 

이에 비해 <신(新)>은 “㉠새, 새로운, ㉡새로, 새롭게, 새롭게 다시, ㉢처음, 처음으로, ㉣새로움, 새것, 새로운 일, ㉤새해, 신년, ㉥새롭게 안 사람, ㉦새로 개간한 땅, ㉧나라 이름, ㉨새로워지다, 개선되다, ㉩새롭게 하다, 새롭게 고치다, ㉪친하다, 친하게 지낸다...”등의 뜻을 가진 말이라 이것이 말머리에 놓이면 <새롭고 가치로운 것, 새로워 받아들여야 할 것...>등으로 썼던 것입니다. 그 례가 <신간(新刊)=새로운 간행, 신소설(新小說)=새로운 소설, 신시(新詩)=새로운 시, 신녀성(新女性)=새로운 녀성...등>입니다. 그러나 이 <신(新)->이 널리 쓰이게 된 만큼 나라는 망하게 되는 길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설[新正]을 쉬게 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건양다경(建陽多慶)]”고 한 것입니다. 이에 배달겨레 선비들은

 

“주역에 나오는 <건양(乾陽=하늘은 양)>이란 말을 끌어다 ‘양력[陽]을 세우면[建] 경사스런[慶] 일이 많이[多] 생긴다[=건양다경]’라 하니 참으로 가소롭도다. 차라리 '새봄이 오면[立春] 크게 좋은(大吉)일이 있을 것이니라[=입춘대길]’라 함이 맞느니라.”

 

하며 맞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생겨난 바탕과 흐름과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건양다경><입춘대길>이라는 말이 무슨 대단한 경구나 되는 것처럼 여기고 해마다 정월에 입춘이 가까워 오면 여기저기 붙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정(新正)>이란 말은 광복 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설날’이 되면 학교에서는 수업일수로 잡고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먼 곳에 둔 교수자는 출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수업이 진행될 수 없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출석확인도 고향이 가까워 일찍 올 수 있었던 교수자가 대신하는 일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1984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신정>은 휴무일이었으나 <설>은 수업일이면서 근무일이었습니다. 명분은 “이중과세”라는 이름으로 명절을 두 번 쉬면 가정경제와 나라경제를 해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월 초하루를 <설>이라 하며 잘 쉬어왔던 사람 가운데 일부는 양력 1월 1일을 <설>인 것처럼 여기고는 바꾼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1985년에 배달겨레 ‘설’을 '민속의 날'이라 하여 하루를 공휴일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달겨레 선비(짐계선생)가 <설>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까닭과 흐름과 배달겨레문화력사 전통을 구명하면서 3일은 쉬어야 한다는 문화력사교육가치를 글로 지어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1989년에서야 비로소 나라에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음력 정월 초하루>를 앞뒤로 한 3일을 공휴일로 정한 것입니다.

 

때문에 때묻은 자팬말 <구정(きゅうせい)>이란 말을 이제 깨끗이 쓸어내어 버리고, 배달겨레 선조들이 써 왔던 <설><설날>이라는 말로 되돌려야 합니다. 더구나 설날아침에 지내는 <명절제사=원조절사>를 줄여서 만든 <절사(節祀)>라는 바른말을 해괴말 <차례(茶禮)> 대신 돌려놓아야 합니다.

 

설날 아침 <절사>는 세배를 하고 난 뒤에 올리는 것입니다. 이는 생자우선(生者于先)이라는 유가법도(儒家法道)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절사>를 지내고 나서 세배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설날절사가 생겨난 바탕[淵源]을 모르고 주객을 뒤바꾼 것입니다.

 

설날아침에 올리는 <절사>는 병신년(1896)부터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의 <성산 려(呂)씨 문중에서 처음으로 시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나온 이른바 <국어사전>이 <명절제사, 원조절사>라는 말을 줄인 <절사>라는 바른말 대신 <차례(茶禮)>라 한 것입니다. 바로잡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양력 1월 1일'을 <양력설>이라 하고,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음력설>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가 찰 일입니다. 본디 <설>이란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를 이르고,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만을 이르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양력설>이라 하면 “<설>이 양력에도 있었던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배달겨레문화력사 전통을 뒤흔드는 잘못된 용어는 일부 사람들이 쓴다 할지라도 고급문화형성과 국위선양을 위해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양력 1월 1일'은 <설>이 아니라 <새해 첫날>입니다. 그래서 <양력 1월 1일> 또는 <새해첫날>로 바로잡고, '음력 정월 초하루'는 <설날>로 바로잡아 1만 년을 이어온 배달겨레문화력사 전통을 바로세워 짓밟혔던 배달겨레 문화력사 정기(精氣)를 되살리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 (1)(2)를 다음 (3)(4)의 ●처럼 덧붙이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3) 신정07(新正)「명사」

「1」본디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이르던 말이 나라잃은시대 후로 '양력 1월 1일'을 이르게 된 말.

●「2」고종33년(1896년, 병신년)에 음력을 없애고 양력을 쉬게 함으로써 생긴 날.

●「3」일본은 조선의 <설>을 구정(舊正)이라 하고 이를 상대하여 이르던 말. ¶ 신정 연휴/신정을 맞아 민욱은 며칠 동안 집에 머물러 있었다.≪신상웅, 심야의 정담≫

 

(4) 구정(舊正)06「명사」

●「1」조선의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을 일본이 이르던 말.

●「2」일본이 이르던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을 상대하여 이르던 말. ¶ 구정을 쉬다.

●「3」나라잃은시대인 1923년 이후 일본이 이르던 음력 정월 초하루인 '설'을 '구정월원일(舊正月元日)'이라 하고서 그것을 받아 줄여서 이르던 말.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명년정(明年正=래년 설), 하정(賀正)=설 인사례, 하제정(賀帝正)=차이나 황제가 맞는 설 인사례> 등으로 써 왔습니다. 그러다 <신정(新正)>이란 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명종 13년(1558년) 12월 24일>이었습니다. 그 뒤로 수십 곳에서 나타났으나 양력이 도입되기 전이라 모두가 “新正月元日=음력 정월 초하루(=설날)”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음력 정월 초하루(=설날)’를 두고 <구정(舊正)>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 『新正』元日 非如常日≪明宗實錄≫ 13年(1558) 12月 24日

--->신정(新正) 설날은 보통 때와는 같지 않다.

 

○ 中朝『新正』三日 例爲素食≪宣祖實錄≫ 31年(1598) 1月 1日

--->중조(中朝)에서는 『신정(新正)』 3일 동안에는 으레 소식(素食)을 하다.

 

○ 淸正檄慶尙州縣 期于『新正』 狂遑橫謀 尤不可言≪宣祖實錄≫ 31年(1598) 2月 19日

--->가등청정(加藤淸正)이 경상도 주현에 격서를 보내어 『신정(新正)』을 기회로 횡포한 음모를 마구 부리겠다고 하니 사태는 더욱 말할 수가 없다.

 

○ 通判曰 『新正』有慶 願少駐駕≪宣祖실록≫ 32年(1599) 1月 5日

--->통판이 말하기를 “『신정(新正)』에 경사가 많으니 조금만 더 계시오.”

 

○ 僕賀『新正』必以大師書之旨 報家康≪宣祖實錄≫ 36年(1603) 31年) 3月 24日

--->『신정(新正)』을 축하하며 반드시 대사의 편지 내용을 덕천가강(德川家康)에게 보고하겠다.

 

○ 調信 賀『新正』 赴王京≪宣祖實錄≫ 36年(1603) 31年) 3月 24日

--->조신이 『신정(新正)』을 축하하러 왕경으로 갔다.

 

○ 放釋輕囚十人 以『新正』迫近故也≪仁祖實錄≫ 13年(1635) 12月 30日

--->가벼운 죄수 10명을 석방한 것은 『신정(新正)』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 若曰 迓『新正』而其休用申 上天啓得一之運受介福≪高宗實錄≫ 15年(1878) 1月 1日

--->요략하여 이르기를 “『신정(新正)』을 맞아 하늘은 큰 운수를 열어 주었고 임금은 하늘에서 크나큰 복을 받아 여기서 그치지 않다.”

 

그리고 <양력>과 '건양'이라는 <년호>와 <구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詔曰 正朔을 旣改야 太陽曆을 用지라 開國五百五年으로 始야 年號를 建호 一世一元으로 制定야 萬世子孫이 恪守케 라≪高宗實錄≫ 33卷, 고종 32年 11月 15日 辛亥.

->조령을 내리기를, "정월 초하루를 이미 고쳐 태양력을 쓰도록 한 만큼 개국 505년부터 년호를 세우되 일세일원으로 정하여 만세토록 자손들이 조심하여 지키게 하라.“ 하였다.

 

○ 內閣總理大臣金弘集以 謹奉詔勅年號 以建陽議定 經閣議 上奏 制曰 可≪高宗實錄≫ 33卷, 高宗 32年 11月 15日 辛亥.

->내각 총리대신 김홍집이 ‘조령을 삼가 받들고 년호를 건양으로 의정하고 내각의 론의를 거쳤습니다.’라고 상주하니, 조령을 내리기를, "재가한다." 하였다.

 

○ 十六日 詣璿源殿 行正朝茶禮【本日 舊正月元日】≪純宗實錄≫ 附錄 14卷, 純宗 16年 2月 16日 陽曆 1923年, 日本 大正 12年 .

->16일 선원전에 나아가 정조 다례를 행하였다. 【본일은 舊正月元日(=음력 정월 초하루)이다.】

 

보는 바와 같이, 이때까지만 해도 <신정(新正)=신정월원일>은 “새해 설날”로써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이르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종 33년(1896) 이후 나라잃은시대[실국시대]로 오면서 <신정(新正)>이라는 말이 “양력 1월 1일”이라는 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디 썼던 <음력 정월 초하루>를 나라잃은시대[失國時代]인 순종 16년(1923, 자팬 大正 12年) 2월 16일에 <舊正(月元日)>에서 비롯된 <구정(舊正)이라는 해괴말로 대립시켰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낡아서 던져버려야 한다'는 뜻을 지닌 말<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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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신정, 구정 (건의)

답변자온라인 가나다답변일 2009. 1. 2.

안녕하십니까?

사전 부서에서 참고하도록 보내 주신 글을 전달하였습니다.

 

================▣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ㅇ 新正----<新正月元日=새로운 음력 정월 초하루>이라는 본디 배달말, 

..............-----부왜배에 의해 양력을 쉬면서 '양력 1월 1일'을 이르는 말로 변질.

ㅇ 舊正----배달겨레는 력사 상 쓰지 않은 말.

..............-----나라잃은시대[실국시대]인 1923년 2월 16일에 <舊正(月元日)>에서 비롯된 말로 '음력 정월 초하루'.  

 

어떻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나라잃은시대[실국시대]인 1923년 2월 16일(日本 大正 12年)에서야 나타난 ’舊正(月元日)에서 비롯된 '舊正(きゅうせい)'을 자팬침략의 잔재라 볼 근거가 없습니까.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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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 온라인가나다                               답변일시 : 2016. 2. 16.

안녕하십니까?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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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 온라인가나다                               답변일시 : 2016. 2. 22.

안녕하십니까?

예전 답변처럼 '구정'을 일본식 한자어로 볼 근거가 없으므로 수정하기 어렵습니다.

삭제
[답변]구정
  • 답변자온라인 가나다
  • 답변일2016. 2. 25.

안녕하십니까?

구정에 대한 어원 정보가 없으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 제시한 내용은 개인적 가설에 해당하므로 온라인가나다에서 선생님의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덧붙여, 이 질의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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